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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을 진행하며 과속방지턱 마냥 턱 턱 걸려대던 문제점들을 애써 무시하며 달려왔다. 분명 뭔가가 마음에 걸리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짚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프로젝트는 레이지 스미스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도움이라기보다는 거의 컨설팅에 가까운 수준이지만. 소셜펀딩 프로젝트 페이지 작성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오픈을 앞두고 신경이 곤두선다. 텍스트와 이미지를 하나 하나 살펴보며 다듬고 수정하고 또 다듬는다. 만일 나 혼자 진행했다면 '이 정도면 됐어' 하고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채 프로젝트가 엉망이 될 수도 있었다. 레이지 스미스와의 협업은 보다 더 신경을 날카롭게 유지해주었다. 더 이상은 나 하나를 위한 프로젝트가 아니다. 나와 내 폰트도 보다 널리 알리고 레이지 스미스도 알려야 한다. 어떻게 사람들에게 알릴 것인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브랜드로서 인지하고 기억해줄 것인가. 고민이 점점 더 무거워진다. 작업은 즐겁지만 확실히 이런 고민은 그리 즐겁지 않다. 이런 부가적인 고민들은 스스로 해결하기도 힘들고 부담스러운 게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구속하는 느낌이랄까. 그렇지만 가볍게 여길 일도 아니고 무시하거나 미뤄둘 수도 없는 일도 아니다. 산너머 산이다. 이렇게 계속 성장해나가는 것이겠지만. 두통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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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오픈을 앞두고 내내 마음에 걸리던 폰트 이름을 도마 위에 올렸다. 처음에는 <ZESS TYPE 1ST-BLACK>. 한글 폰트인데 영문 풀네임을 쓰기도 적합하지 않았고 너무 길었다. <제스타입 1ST-블랙> 전보다는 짧아졌지만 아직도 폰트 이름 치고는 길었다. 그렇게 지금 쓰고 있는 폰트 이름은 <ZSST 1ST블랙>. ZESS. ZEST. ZSST. 글자 수는 줄였지만 뭐라고 읽고 부르기가 애매했다. 최종적으로는 <Z.블랙>으로 결정했다. 지.블랙. 이제 펀딩 준비는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 남은 것은 리워드로 보내드릴 카드 시안을 잡아야 한다. 아무래도 소셜펀딩은 리워드가 너무너무 중요하다. 크리스마스 카드와 신년카드 그리고 2016년 카드 달력. 리워드 발송을 12월 18일로 잡은 만큼 리워드를 어필할 수 있을 것 같다. 별 생각 없이 아트웍 포스터를 제작하려던 내가 새삼 한심하다. 다음주 월요일 8월 31일을 디데이로 계획하고 하나씩 매듭짓고 있다. 과연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될지 너무너무 궁금하다. 설렘과 불안에 다리가 떨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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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작업을 정리하고 침대에 드러누워 스마트폰으로 작업일지를 기록하고 있다. 머리 속으로 리워드 시안을 그리면서 눈을 붙인다. 그리고 아침 7시면 눈을 뜨고 다시 작업을 시작할 것이다. 직장 생활을 할 때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작업한다. 아무래도 남의 일을 돈 받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돈을 벌기 위해서 해야 하는 내일이기 때문이다. 더 힘들지만 그래도 즐겁다. 나는 내일을 즐기고 있다. 언제까지 즐길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늘 좀 더 여유롭기를 바란다. 바랄 뿐이지 여유라고는 없다. 한가로이 책을 읽고 싶어도 작업이 눈에 밟히고 걱정과 고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대신해줄 사람도 없고 월세날은 하루하루 다가온다. 월세가 부담될 때면 늘 제주도가 떠오른다. 매일 늦은 저녁 이면 밤바다를 보러 방파제를 찾아가곤 했다. 제주도에 내려가서 편하게 작업하고 싶어도 일은 모두 서울에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이 깊은 새벽에 문득 그 방파제가 그립다. 서른이 되고 또 서른 하나가 되고 불과 이십 대 중반에도 내가 이 나이에 이러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하긴 미래에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해본 적이 많지 않다. 구체적인 모습보다는 언제나 상상에 가까웠으니까. 늘 비현실적이었다. 회사를 떠나고 5개월. 내 모습은 좀 초라하다. 그래도 늘 내 곁을 지켜주는 파트너 덕분에 거지 꼴은 면하고 있다만. 파트너를 위해서라도 이번 펀딩 프로젝트가 큰 성과를 내길 바라고 또 바라며 만전을 기하는 수밖에 없다. 펀딩을 오픈하고 나면 바쁘게 폰트 제작에 들어가겠지만. 프로젝트를 완료하고 나면 책 한 권 쯤은 여유롭게 읽고 싶다. 바쁘게 달려온 그 발자취들을 기록하고 정리하면서 다음 프로젝트를 지금보다는 여유롭게 계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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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부족하고 늘 모니터만 바라보느라 두 눈이 빨개지고 싸구려 의자에 눌어붙은 엉덩이는 떨어질 줄 모르는데 자세는 구부정하니 목과 허리가 아파온다. 에어컨도 없는 원룸에서 뜨겁게 달궈지는 노트북을 앞에 두고 하루 매일 12시간씩 작업을 해왔다. 그래도 이번 여름을 잘 버텨냈다. 내년에는 에어컨을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지. 작업에 집중하다 보면 밥을 먹는 것조차 잊어버린다. 사실 밥 차려 먹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허기는 익숙하다. 그렇게 하루 한 끼, 혹은 두 끼를 먹으면서 살고 있다. 파트너의 말처럼 나는 정말 디자인을 즐기는 것 같다.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제대로 작업해보고 싶다. 언제 쯤 나는 내가 바라는 것들을 이룰 수 있을까. 얼마나 더 열심히 살아야 이런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시간이 지나야 여유를 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아픈 허리 때문이라도 일단은 좀 누워서 잠을 청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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