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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에 걸친 타입스케이프 전시가 끝나고. 4월이 되어 HOHOHO PLACE로부터 전시 제안을 받았다. 이제까지 해온 그룹전이 아닌. 첫 번째 개인전. 사실 작년부터 개인전에 대한 욕심을 키워왔다. 그룹전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자신 있게 개인전을 열자니 무언가 많이 부족해 보였다. 작년만 해도 별다른 대책 없이 2016년이 오면 개인전을 해보겠다. 다짐해왔지만. 정작 해가 넘어가고 예전 작업을 보고 있으면 부족한 부분들이 눈에 들어와서 또다시 내년을 기약하고 있었다. 그래서는 어느 세월에 개인전을 해보겠나 싶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을 머리 속에 굳히고 있었다. HOHOHO PLACE의 제안에 잠시 고민했지만. 굉장히 좋은 기회였다. 사실 개인전에 대한 의지를 주머니 속에 깊숙이 찔러 넣은 것은 김희수 작가의 노멀 라이프 전시를 보고서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만큼 멋진 전시를 선보일 수는 없겠지만. 당장의 최선을 보여주면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제안을 수락했고. 바쁘게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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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작업들을 정리하고. 웹용 이미지를 출력용으로 수정하고. 새로운 작업들을 추가하며. 2주를 정신없이 보냈다. 최대한 많은 작업을 선보이고자 액자 살 돈까지 모두 출력에 쏟아 액자 없이 벽에 걸었다. 날클립과 마스킹 테이프로 어수선하게 전시된 작업들을 보여 지금 당장은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 준비에만 열을 올리다 보니 홍보에 소홀했다. 4월 22일 금요일 저녁 6시에 오픈한 내 첫 번째 개인전은 한적했다. 당장 이게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최선임에도 누군가를 초대하여 선보이기가 망설여졌다. 아. 내가 아직 많이 모자라는구나. 되려 스스로 자신감을 잃었다. 다음날. 그 다음날도 전시장은 한적했다. 나는 조용히 구석에 자리 잡고 밀린 작업들을 진행했다. 이따금 찾아오는 방문객들과 짧은 대화를 나누기도 하면서. 정말 고맙게도 찾아와 주신 모든 분들이 좋은 말만 남겨주었다. 누군가 형편없다고 모질게 말했다면 조용히 꽁무니를 빼고 도망쳐 나갔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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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다. 말수가 적은 편이고. 대체로 조용히 내 작업만 열심히 하는 타입이다.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은 아니지만 붙임성이 좋지도 않다. 낯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야 간단하지만.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덕분에. 여러 차례 그룹전도 진행하면서 다른 작가들과 만날 기회도 많았지만 몇 마디 나누지도 못했고. 매번 그 자리를 겉돌다 혼자 빠져나오곤 했다. 이런 점들을 고치고 싶지만 사람이 어디 쉽게 변하는 동물인가. 정말 쉽지가 않다. 본의 아니게 여러 사람을 실망시키고. 그제야 나는 실수했구나. 경솔했구나. 반성하며. 이런 글을 남기고 명심하고자 한다. 사람이 가장 어렵다. 늘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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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부터 꾸준히 작업만 하면서. 지금은 정말 작업만 꾸준히. 열심히 하면 될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더 좋은 기회. 제안들이 찾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형편은 그다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당장 힘들어도. 3년만 참고 기반을 마련해보자. 정작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제자리라면. 3년이 지났을 때 나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걱정이 머리 한 구석에 늘 자리 잡고서 틈틈이 존재를 과시한다.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고. 결국 내가 하기에 따라. 내가 하는 만큼 돌아오는 것이지만. 이런저런 근심 걱정들이 떠오를 때마다 힘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당장은 방법이 보이지 않지만. 그저 스스로를 잘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속이고 있다. 잘 될까.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결국 떠오르는 답은 한 가지뿐이다. 될 때까지. 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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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디자인과. 폰트 디자인. 나는 지금까지 그래픽 디자인을 해왔고. 앞으로도 폰트 디자인과 함께 그래픽 디자인을 하려 한다. 다만. 최근에 들어서 나 자신이 그래픽 디자이너인지. 그래픽 아티스트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을 느꼈다. 예전부터 그래피티를 하며 그러한 감성이 그래픽 디자인에 담겼다. 독립 디자이너가 되고서 나는 그저 하고 싶은 작업들을 주로 진행해왔다. 가끔씩 외주 의뢰를 받고서 클라이언트를 두고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지만. 전체 작업량을 따지자면 3할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을 점점 잃어가는 느낌이었다. 폰트 디자인 역시 클라이언트 없이 내가 제작하고 싶은 폰트를 디자인한다. 꾸준히 작업하고. 전시하고. 작업을 반복하고 있지만. 나는 과연 디자이너인가. 아티스트인가. 별로 중요하진 않은 문제지만. 생각해보니 오래전 군복무를 끝마치고 1년간 쉬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다. 디자인을 하되. 디자이너가 되고 싶진 않다. 이상한 소리지만. 지금 하는 고민도 이와 크게 달라지진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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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더 열심히 살아야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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