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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또 정신없이 지나간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올해는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폰트 디자인과 개인전시 그리고 또 폰트 디자인. 디자이너로서 사회에 발을 들인 2013년. 첫 직장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2015년 3월까지 일을 하고 퇴사했다. 뚜렷한 대책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 열심히 일했고. 퇴사하고 나서 더욱 분주하게 작업했다. 그렇게 2개월 열심히 작업하여 SNS를 통해 노출했더니 6월부터는 그룹 전시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윤디자인에서 주최한 광복 70주년 기념전을 비롯하여 몇 차례 그룹전을 진행하면서 8월 첫 번째 폰트를 만들었다. 이용제 디자이너의 바람체를 보고 크라우드펀딩을 도전하여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 그렇게 지블랙 폰트를 만들고 2016년 1월 삼원페이퍼갤러리에서 TYPE SCAPE 전시를 진행했다. 4월에는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고 6월에는 이용제 디자이너의 제안으로 COEX에서 진행된 서울국제도서전의 특별전시에 참여했다. 8월에는 두 번째 폰트인 비옴 타입페이스를 제작하기 위한 크라우드 펀딩으로 1,200만 원을 후원받았고. 9월에는 지금 일하고 있는 더파이스 엔터테인먼트를 오픈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부지런히 비옴 폰트를 작업하고 있다. 얼마 전 이용제 디자이너를 만나 미팅하던 중 이용제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한글타이포그래피학교에서 레터링 수업을 제안받아 내년 2월 정도에 첫 수업을 개강할 예정이며. 조만간 잡지 두 곳에 내 이야기가 실리게 된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6번의 EXHIBITION과 6번의 PRESS. 그리고 1ST블랙, 지블랙 오리지날, 네온사인, 멜트다운, 비가온다PT02, 비옴타입-50비. 6개의 폰트. 2016년.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 일종의 터닝포인트. 몇 개의 이정표들이 그 갈림길마다 세워져 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는 디자이너라기보다는 직장인이었다. 얼마 되지 않는 월급이지만 안정적인 삶을 과감하게 내버리고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직장인보다는 디자이너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디자이너로서 가지고 있는 역량을 계속해서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다양한 시도를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자신만의 작업을 쌓아가는 디자이너. 그렇게 나는 직장을 뒤로하고 독립디자이너로서 홀로 섰다. 물론 생활은 불안정하고 궁핍하다. 그럼에도 직장생활을 할 때보다는 훨씬 행복하다. 


나는 글자를 그려왔고. 글자를 그리고 있고. 글자를 그려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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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얘기는 접어두고 근황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레터링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이런 클래스를 몇 차례 진행해보긴 했지만 체계적인 부분도 부실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진행하여 그리 질 좋은 수업은 아니었다. 제안을 받아 수업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수업의 목적. 방법. 과정. 결과물 등 여러 가지를 고민하여 커리큘럼을 만들었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을까. 나에게서 무언가를 배워갈 수 있을까. 무엇을 가르쳐야 하고.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다른 무엇도 아니고 레터링이라면. 할 수 있다. 좋은 수업을 만들 수 있다. 좋은 수업을 만들기 위한 준비 과정이 필요하다면 또 열심히 준비하여 수강생을 맞이하리라. 글 재주도 썩 좋지 않고 말주변도 대단하지 않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열심히. 아니 체계적으로. 적절하게 기본기와 응용방법을 가르쳐준다면. 누구나 나처럼 글자를 그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단시간에 뚝딱하고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간을 분명히 상당히 줄여줄 수 있다. 아무튼 막상 수업을 시작했는데 수강생이 없으면 곤란하니 어떻게 수업을 홍보할지도 고민하고 있다. 고민이 쌓여간다.


어제는 메일 확인을 하다가 월간디자인에서 온 취재 요청 메일을 발견했다.

하루 늦게 확인하여 바로 회신했더니 당일 마감이라며 이미지와 텍스트를 독촉해왔다. 월간디자인이라면 나도 아는 잡지니 한번 실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원본 이미지와 간략한 소개 글을 보냈다. 박근혜 하야 관련 레터링 작업 세 가지를 요청했는데. 설마 잡혀가거나 그러지는 않겠지.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세 차례 잡지에 소개되었었는데 한 번도 돈을 받은 적이 없다. 본래 이 바닥이 그런 것인지. 취재 비용 같은 것은 원래 없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따로 원고 청탁이 들어와 5,000자 분량의 글과 이미지를 작업할 때는 소소하게나마 돈을 받았었는데. 그냥 우리가 소개해주면 너도 좋지 않느냐는 논리인 것인지 모르겠다. 물론 소개해주면 좋지만 그것이 정당한 대가는 아니지 않은가. 좋은 듯하면서도 이게 좋은 건가 싶은 그런 느낌. 좋은 게 좋은 것인지. 그다지 썩 좋지 않은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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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 폰트 디자인. 비옴 타입페이스. 50 미디엄 웨이트. 비 폰트.

비옴 타입페이스는 장기 프로젝트로 2017년 12월 12일 완성되지만. 그 긴 시간 기다림이 무료할 후원자 분들을 위해서 중간중간에 1차 검수를 진행한 아직 완성되지 않은 폰트를 보내드릴 계획이다. 일단 12월 말일까지 비 폰트를 검수하여 보내드리려고 두 손과 두 눈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얼른 완성하고 다른 작업을 진행하고 싶지만 한번 시작한 폰트 디자인 작업은 그리 쉽게 끝나지 않는다. 이전에 작업한 과정들을 돌아보면 적어도 그리는 시간이 두 달 남짓. 그리고 그린 글자들을 검수하는 과정이 한 달 정도. 이번에는 11,172자를 그렸으니 검수하는 시간이 더욱 늘어났다. 어떤 때에는 한 시간 내내 수천 글자를 들여다보아도 잘못된 부분을 찾지 못하는가 하면 어떤 때에는 십 분 만에 두세 가지의 오류를 발견하기도 한다. 집중력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컨디션에 따라서 되는 날이 있고 안 되는 날도 있다. 안 되는 날에는 다시 글자를 그린다. 50비 폰트뿐만 아니라 10안개비, 30가랑비, 70작달비, 90장대비까지 아직 그려지지 않은 11,172 X 4 한글에 더하여 영문과 숫자, 문장부호와 특수문자까지 더해지면 그 작업량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그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력이 달랑 폰트 파일 하나로 출력되면 조금은 허탈하기도 하지만. 아무튼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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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것은 여담이지만.

폰트 디자인을 일로 할 때 레터링은 취미로 하는 하루 종일 작업밖에 모르는 내가 일 년에 한두 달 정도 게임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가 있다. 게임을 잘하진 않는다. 전에는 롤을 했었다. 시즌1 북미 서버부터 했었는데 몇 년 동안 했는지. 플레티넘까지 올라갔다가 오버워치가 나오고 관뒀다. 롤을 하면서 나는 멘탈을 단련했다. 어지간한 정신 공격에는 정말 그러려니 해버린다. 아무튼 오버워치가 나오고 미련 없이 관뒀다. 오버워치도 한 동안 재미나게 했었는데. 폰트 작업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레 손을 놓게 되었다. 하필이면 맥에서는 구동되지 않으니 부트캠프까지 써가며 하다가 128기가 밖에 안 되는 맥프레의 저장공간이 부족하여 윈도우를 밀어버리고는 작업만 하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뜬금없이 디아블로3가 하고 싶어 졌다. 디아블로1, 2도 재미나게 했었는데. 3도 재미있다. 아마 한두 달이면 또 시큰둥해지겠지만. 이전에 개봉한 워크래프트 영화를 보고는 정말 오랜만에 와우를 다시 설치해보았는데. 와우는 너무 방대하다. 그리고 디아블로3보다 그래픽이 후지다. 생각해보면 2004년 대학 신입생 때 와우 베타테스트부터 시작했었는데. 아무튼 블리자드는 참 게임을 잘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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