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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일지를 작성해야 하는데 작업하느라 일지를 기록할 시간이 마땅치 않았다. 그동안 너무 손을 놓고 있는 것 같아 지금이라도 손을 들었다. 너무 일상적인 이야기만 떠든 것 같아 조금이라도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 기록에 대단한 의미는 없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시작했지만 그동안 너무 내 이야기만 떠들었다. 다시 정신을 차려서 21번째 작업일지를 기록한다.


2017년 들어서 영문 폰트 작업을 시작했다.

언젠가는 시작하려 했던 일. 당장은 완성도 높은 영문 폰트를 제작할 수 없겠지만. 한 달에 하나씩 연습 삼아 제작하면서 조금씩 수준을 끌어올려 해외 플랫폼에 선보일 생각이다. 현재는 이렇게 제작하고 있는 영문 폰트를 무료 배포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페이스북 페이지와 내 웹사이트. 그리고 http://www.dafont.com/ 에도 업로드하여 배포하고 있다.


영문 폰트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처음에는 그저 쉽게 생각했었다. 한글 폰트를 제작하면서도 영문을 그렸었고 한글과는 글자 수의 차이가 굉장했기 때문에 그 작업량이 적어 쉽게 생각했는데 한글 폰트와는 다른 부분에서 애를 먹고 있다. 영문 폰트는 글자 수가 적은 대신 각 글자를 보다 세심하게 그리고 공간을 조절해주어야 한다. 한글 폰트를 작업하면서 조합 규칙을 지켜 수많은 글자를 균질하게 그려내던 것과 달리 영문은 글자의 형태가 모두 다르기에 모두 다르게 그려 비슷한 결과물을 이끌어 내야 한달까. 물론 비슷한 형태는 같은 규칙을 따라야 하지만. 각각의 글자가 조합되어 텍스트를 이룰 때 그 균형이 아쉬운 경우가 많았다. 



다운로드 - http://zesstype.com/download



위 이미지는 지블랙 오리지날 타입의 영문 부분이다. 

지블랙 폰트의 한글 부분은 그 글자의 폭이 넓고 볼드하다. 영문은 그 획의 두께와 글자의 높낮이만 맞춰 그렸었는데. 지금 보면 아쉬운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커닝이다. 지블랙 폰트에는 각 글자별 커닝이 없다. 당시 나는 커닝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기에 손을 델 수 없었지만. 그뿐만 아니라 한글과의 조형적 특징을 유지하기 위해 K, R, k 등에 획을 분리시킨 부분도 눈에 거슬린다. 각 글자의 폭과 내부 여백도 아쉽고. 문장 부호와 특수 문자 중 & 만 보더라도 글자의 형태를 나타내기 위해 획의 두께를 얇게 해서 텍스트로 조합되었을 때 어색함을 감출 수 없다. 첫 번째 폰트였던 만큼 아쉬운 부분이 많아 현재 수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본래 지블랙 타입은 그동안 사용자들에게 받은 피드백을 토대로 연말에 수정한 폰트를 구매자들에게 재배포해야 했는데 영문 부분을 새로 작업하고 있어 재배포가 늦어지고 있다. 얼른 마무리해야 하는데. 손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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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이미지는 올해 들어 처음으로 제작해본 첫 번째 영문 폰트였다. GRAFIKA.

보시다시피 아주 개판이다. 기획부터가 개판이었다. 각 글자들의 높낮이와 글자 폭을 다르게 제작하여 텍스트를 이룰 때 불균형 속에 안정감을 잡아보려 했지만. 잡을 수 없었다. 영문 폰트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이 결과물을 보고 나조차도 할 말을 잊었다.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애를 써보았지만 내 실력으로는 무리였다. 이 형태를 살리기보다는 차라리 새로 디자인하는 것이 빠르겠다는 판단에 다음 작업을 진행했다.



다운로드 - http://www.dafont.com/grafika-type-1.font



GRAFIKA TYPE.1은 처음 제작했던 GRAFIKA가 아쉬워 기존의 K와 M의 형태를 살려 만든 폰트였다. 각각의 글자를 그릴 때는 잘 그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 그리고 타이핑해보니 글자가 조합되며 나타나는 형태가 딱 보기에도 어설펐다. 커닝의 부재도 한몫했겠지만 그보다 글자의 형태 자체가 그저 조합 규칙을 지켜 그린다고 안정감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대소문자가 혼용될 경우 그 어설픔이 더 부각되었다. 지금 단계에서 어떻게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 수는 없을 것 같아 이 작업은 여기서 멈추고 다음 생각해두었던 영문을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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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난한 형태에서 답이 없다면 보다 독특한 형태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 그렸던 GRAFIKA TYPE.2

그릴 당시에는 대단히 마음에 들었지만 폰트로 제작하고 나서 또다시 그 어설픔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왜 이렇게 어정쩡할까 많은 고민을 남긴 작업이었다. 형태나 조합 규칙까지는 마음에 들었지만 완성된 형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라리 레터링이었다면 간단하게 다듬어 더 보기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겠지만 폰트는 레터링과 다르다. 이 작업부터는 커닝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 수준은 고작 레벨 1짜리 간단한 규칙적 커닝이었지만 그래도 커닝이 적용된 상태와 적용되지 않은 상태의 결과물은 큰 차이가 있었다. 나중에 조금 더 레벨이 높아지면 다시 이 형태로 작업해볼 생각이다. 영문 폰트에 흔히 있는 그 PRO 버전으로. 다양한 웨이트와 패밀리로 구성하여 판매해야겠지만. 아무튼. 지금 연습하고 있는 모든 폰트 또한 마찬가지다. 이대로 버려둘 생각은 없다. 언젠가 되살려 제대로 세상에 빛을 보여줄 수 있도록. 꾸준히 연습해야겠지만...



다운로드 - http://www.dafont.com/grafika-type-3.font



그리고 최근에 그린 GRAFIKA TYPE.3

글자의 형태도. 조합 규칙도. 각 글자 간의 균형도. 커닝도 제법 많이 신경 써서 만든 영문 폰트로 어느 정도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가장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작업이기도 하지만 의도한 대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무언가 깨달은 작업이기도 했다. 쉽게 생각했었지만 무언가 어려웠던 영문 폰트 디자인이. 아 이렇게 해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가벼운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벽이라면 그 벽을 뛰어넘거나 깨부수는 수준은 아니지만 우회하는 정도의 해답. 뭐랄까... 레벨 2가 된 느낌이랄까. 


영문 폰트를 제작하는 것은 굉장히 쉽다. dafont.com만 보더라도 수많은 아마추어 폰트 제작자들이 수많은 폰트를 제작하여 업로드하고 있으니. 하지만 이 중에 판매 가능한. 구매자가 선뜻 돈을 지불할 수 있는 그런 매력적인 폰트는 얼마나 될까. 나 또한 쉽게 접근하여 쉽게 디자인하고 있다. 허나 거기에 그치지 않고 더 높은 수준을 목표로 하기 시작하면 배워야 할 것도 많아지고 고려해야 할 요소도 많아진다. 나도 아직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베스트셀링 메뉴에 자리한 폰트들을 보고 있으면 또다시 글립스(폰트제작 프로그램)를 켜게 된다. 하면 된다. 안되면 될 때까지 하면 된다. 그런 생각으로 그저 꾸준히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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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폰트 제작이야 취미 생활 같은 것이고.

지금 가장 신경 쓰고 있는 작업은 비옴 타입페이스 - 90 장대비 폰트다. 한글 부분은 1차 완성했지만 영문과 문장 부호 그리고 특수문자를 디자인하다 보니 영문 폰트 제작에 손을 대게 되었다. 한글 폰트라 하더라도 영문 부분을 어설프게 제작할 수는 없으니. 2월이 다 가기 전에 90 장대비 폰트를 1차 완성하여 후원자들에게 재배포해야 하는데. 약속한 시간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완성도를 포기하고 데드라인에 급급하여 디자인하고 싶지는 않아서 조금은 느긋하게 작업하고 있다. 손으로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머리로 그리는 것이다. 그저 글자를 이쁘게 그리는 것보다 전체를 생각하고 균질하고 안정감 있는 폰트를 제작하기 위해서. 


아직 한창 작업 중이기에 따로 이미지를 준비하지는 못했지만.

비옴 타입페이스는 분명 지블랙 폰트 패밀리보다 완성도가 높다. 이것만큼은 장담할 수 있다. 보다 높은 사용성. 보다 높은 완성도. 회사들이 제작하는 본문 서체에 비하면 모자라겠지만. 한글 폰트도. 영문 폰트도. 꾸준히 제작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또한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만이라거나 오만이 아니라 그냥 나와의 다짐이다. 폰트 디자인. 딱히 은퇴도 없는 평생 직업. 그래픽 디자이너로 롱런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차라리 차근차근 기반을 마련하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었다. 2015년 8월. 첫 번째 한글 폰트 1ST BLACK을 제작하고 1년 반의 시간이 지났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떨까. 그리고 또 1년 후의 나는. 10년 후의 나는 어떨까. 


그 모습을 상상하기보다는 작은 목표들을 꾸준히 세워두었다. 

2018년까지 10개의 폰트를 제작하고.

2025년까지는 정말 멋진 명조체 한글 폰트 하나를 만들고.

해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영어를 공부하고 영문 폰트 디자인에 대한 준비를 끝내는 것으로.

그때 내 나이가 41세일 것이고.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몇 번의 개인전과. 몇 권의 책과. 몇 가지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조용한 곳에서 그저 조용하게 글자를 그리고 싶다.

그리고 2025년이 다가오면 또다시 그 후 1년. 3년. 5년. 10년 후의 목표를 다시 세울 것이다.

부지런히 작업하면서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나가는 것으로 계속해서 성장해나갈 생각이다.

지금까지를 보면 그 이상을 이뤄내고 있으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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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 위해서.

다시 작업으로 얼른 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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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용제 디자이너의 제안으로 한글타이포그래피학교. 히읗에서 레터링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수강생이 모이지 않아 폐강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결국 하게 되었다! 화이팅!


바로가기 - http://typoscho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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