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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작업일지를 작성한다.

8월 말부터 시작된 지블랙 폰트 제작이 12월 말 겨우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계획대로라면 12월 18일 프로젝트 마감과 함께 모든 작업이 끝났어야 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작업 일정은 생각보다 촉박했고 내 체력은 생각만큼 버텨주지 못했다. 연말 카드와 달력은 지금 이 시기가 아니면 쓸모를 잃어버리기에 네온사인 타입보다 먼저 리워드 카드와 달력을 제작했고 겨우 18일에 맞춰 발송할 수 있었다. 계획처럼  크리스마스이브 전까지 무사히 도착할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은 네온사인 타입의 디자인을 끝내고서 검수를 진행하고 있다. 검수는 서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닌지라 한숨 돌리며  그동안 밀린 작업일지를 작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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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날 타입의 검수 및 수정 작업에 계획보다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였다.

물론 지블랙 타입의 골격이 되는 오리지날 타입을 제대로 다듬는 것은 중요한 작업이다. 이 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았자면 다음에 진행될 다른 스타일의 서체들도 영향을 받게 된다. 세 번의 검수를 통해 세 번의 수정 작업을 진행했고 결과물은 모태가 되는 퍼스트 블랙에 비해 많은 부분들이 개선되었다. 그렇지만 그만큼 일정이 미뤄지면서 다음 진행될 작업에 지장이 생겼다. 

애초에 폰트 디자인에 대해서 무지한 채로 시작한 프로젝트인 만큼 작업을 진행하면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고유한 컨셉과 전체적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련의 규칙들을 세우고 그에 따라 획을 배치하며 글자를 구성하는 것부터 각각의 글자의 내부 공간과 획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것 그리고 시각 보정.  한글뿐만이 아닌 영문 알파벳과 숫자나 문장부호 등 다양한 특수기호와 러시아, 그리스, 일본의 글자들. 대체 KS 규격이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출판에 쓰이는 본문 서체라면 언젠가는 그런 요소들이 쓰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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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워드 카드와 카드 달력을 디자인해두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카드와 연말 카드의 경우는 계획대로라면 디자인을 개선시키며 보다 나은 결과물을 내놓고 싶었지만 작업 기간이 여의치 않은 관계로 거의 기존 시안대로 진행되었다. 달력은 기존 아트웍을 이용하여 디자인을 바꾸어 제작했다. 충무로를 직접 오가며 제작을 진행할지 아니면 그냥 맡길지 고민했다. 아무래도 맡기는 편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도 편했다. 직접 제작하면 보통 단가가 더 내려가지만 수량이 얼마 되지 않으니 맡기는 것과 차이가 크지 않아 맡겨서 진행했다. 6장 세트로 구성된 카드 500세트와 표지 포함 13장으로 구성된 카드 달력 200세트. 포장용 OPP 비닐봉투 600매와 라이선스 임시증명서 100매. 인쇄된 봉투 200매. 보너스로 만들어본 스티커 1,000매. 제작은 적당히 일주일 정도 잡고서 진행했고 생각보다 빨리 제작되었다. 이렇게 빨리 제작될 줄 알았다면 택배로 받았겠지만 혹시 늦어지면 일정에 맞출 수 없을 것 같아서 직접 수령했다가 충무로에서 망원동까지  25kg을 짊어지고 옮겼다. 평소 운동도 안 하고 앉아서 작업만 하는 몸뚱이라 다음날부터 온 몸이 아팠지만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었다.

문제는 포장과 발송이었다. 혼자서 일일이 손수 포장했다. 이런 무념무상의 포장 작업은 전 직장에서 수도 없이 해왔던 터라 익숙했다. 다만 잘못 섞이는 것은 없는지 빠진 것은 없는지 계속 확인하며 포장하느라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처음에는 택배 발송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비용이 문제 되어 결국 등기를 고려하게 되었고 우체국에 가서야 등기도 아닌 우편으로 발송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카드라서 우편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는 아니고 가장 저렴했기 때문이다.

300만 원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9월부터 10, 11, 12월 네 달치의 월세 200만 원과 남은 100만 원은 리워드 제작 및 기타 비용으로 계획했지만 그럼 나는 무엇을  먹고살아야 한단 말인가. 생활비로 빠지다 보니 결국 11월이 되자 자금이 바닥났다. 처음부터 고려했어야 하는 부분이었지만 이제 와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때마침 외주 작업이 들어와서 비용을 충당할 수 있었고 프로젝트를 무사히 완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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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가 마무리되고 있는 지금. 많은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작업해서는 생활이 불가능하다. 소셜펀딩이 훌륭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적자였다. 물론 소셜펀딩이 아니었다면 폰트를 제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삶은 폰트 디자인이지만 정작 생활이 되지 않는다면 해결책이 필요하다. 다른 일을 구할지. 발로 뛰며 위주 작업을 얻어올지. 이도 저도 아니라면 제주도로 내려가 조용히 폰트만 만들지. 아무것도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면 다시 구직을 해야 할지. 많은 생각이 든다. 해결책을 찾아서 독립하고 싶지만 지금 한국의 상황을 보자면 캄캄하다. 대기업들은 구조조정에 시끄럽고. 거니는 길가에 점포정리. 폐업이라는 문구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이 난관을 타개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좀 더 현실적으로 비관적으로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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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3년. 2018년까지 10개의 폰트를 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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