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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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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그저 작은 조각 하나를 내 것으로 만들었을 뿐이다. 디자인이 돈이 되기 위해서는 마케팅이 필요하다. 나는 마케팅에 굉장히 무지했다. 목표라거나 타깃이라거나 대충 알고는 있었고 적당히 신경 썼으니 이 정도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내가 만들 폰트의 헤비유저는 누가 될 것이며 그것을 고려한 코어 타깃을 어떻게 설정할 것이냐. 그 개념은 머리로 알고 있으면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기획을 했으니 당연히 엉망이다. 최대한 후원을 유치하기 위해서 후원자들을 설득하고 싶은 마음은 설명을 쓸데없이 길어지게 했다. 텍스트만 넣자니 엉성해 보여서 급하게 이미지들을 넣었다. 그럴싸해 보였다. 하지만 그뿐이다. 알맹이가 덜 익었는데 껍데기만 그럴싸하다고 누가 이 열매에 만족하겠냐는 말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욕심을 내려놓는다. 합리적인 선을 넘어 이 프로젝트를 제대로 성사시키기 위해서 거품을 모두 걷어낸다. 리워드 상의 폰트 가격을 하나에 오천 원까지 내려간다. 두개에 만원. 폰트 하나에 오천 원.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폰트를 구매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나로서는 잃을게 없다. 이 정도면 당장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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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늘어놓은 텍스트를 몇 번이고 곱씹는다. 너무 길다. 포장이 과하다는 느낌을 기획하는 내내 받았었지만 차마 걷어낼 수 없었다. 자꾸만 설명을 덧붙이고 싶어 근질거리는 입을 틀어막고 정리한다. 꼭 필요한 내용만 남기고 스크롤만 늘려놓은 이미지도 걷어낸다. 이 정도로 충분할까? 괜한 걱정에 다시 자판을 두드리지만 이내 되돌린다. 간결하게. 조금 더 간결하게 정리해나간다. 리워드는 차마 뭐라고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누가 이 복잡한 리워드를 일일이 정독하고 선택할 수 있을까. 싹 정리한다. 장사꾼 같은 장난질도 걷어냈다. 간결하고 담백하게. 있는 그대로만 남기고 후원자들의 선택만을 기다리기로 했다. 애초에 그게 옳은 방법이다. 좋은 물에 물고기가 몰리는 것이 당연한 것을. 괜한 낚싯바늘로 물고기들의 입에 상처만 낼 뻔했다. 포스터는 과했다. 사이즈만 크고 보관도 불편하며 제작비와 배송비 측면에서도 비효율적이다. 프로젝트가 완료되고 리워드가 발송되는 시점이 12월 18일이다. 처음부터 이 프로젝트는 연말까지 완료를 목표로 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를 앞두고 받는 리워드라면 크리스마스 카드와 연말 카드 그리고 달력과 같은 리워드가 좋겠다. 쓸모없는 아트웍 포스터보다는 훨씬 매력적이다. 엽서 사이즈라면 패키지도 작아지고 배송에 대한 부담도 준다. 효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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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우드펀딩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내 스스로 부족한 부분들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의 무지함을 일깨워 주는 사람들도 곳곳에 있었다. 배울 것들이 산더미였다. 디자인을 전공했으나 마케팅을 전혀 모른다면 디자이너는 효과적으로 수익을 얻을 수 없다. 작업만 열심히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나 또한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서 작업을 내놓고 또 반복하여 노력과 시간을 소비해 작업을 쌓아간다. 문득 비슷비슷한 결과물들을 쌓아놓고 발전이 없다며 매몰차게 자책한다. 그리고 다시 열심히 작업한다. 그리고 다시 반복한다.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밑 빠진 독으로 열심히 쏟아 붓는다. 최근에 발전이 없었다. 정말 열심히 햄스터마냥 제자리에서 힘차게 달리고 있었다. 무엇이 부족한지 또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볼 겨를도 없이 그저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렸다. 점점 지쳐갈 즘 괜찮은 타이밍에 갇혀있던 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몇 걸음 앞선 셈이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이정표를 기록했다. 23살 군대를 전역하고 첫 번째 이정표를 기록한 후로 지금은 세 번째 이정표를 발견했다. 내게 이정표란 기록은 나를 뒤돌아보는 거울이다. 마주하면 반성이 절로 된다. 그리고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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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제법 올곧게 한 길을 걸어왔다. 10살 때 서예를 배웠다. 12살 때 문자도안을 배웠고 그래피티를 처음 접했다. 16살 때 스프레이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당시 꽤나 진지하게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90년대 초반 그래피티는커녕 힙합 불모지인 제주도 그것도 서귀포에서 그래피티를 하는 사람들은 정말 우리뿐이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인터넷을 통해 보고 배우고 그렸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그래피티와 가장 밀접한 시각디자인학과로 진학했다. 드디어 20년을 나고 자란 제주도를 벗어나 육지로 올라왔다. 타이포그래피와 그래픽 디자인 등을 배우며 그래피티를 해봤지만 교수들 눈에는 낙서였다. 제대로 평가해줄 사람도 없었다. 그저 멋진 낙서일 뿐이다. 군대를 전역하고 나는 그래픽 디자이너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어떠한 과제를 하든 제일 먼저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하는 것이 폰트였다. 닥치는 대로 긁어모은 수천 개의 폰트를 몇 시간씩 뒤적이며 마음에 드는 폰트를 찾아내곤 했다. 26살. 캘리그래피가 막 각광받기 시작하던 때 나 또한 캘리그래피로 작업을 즐겨했다. 마음에 쏙 드는 폰트를 찾는 것보다 컨셉에 맞게 글자를 그리는 편이 훨씬 수월했으니까. 29살에 그래픽 디자이너로 첫 직장에 들어갔다. 내 주업무는 한글 디자인과 한국적인 그래픽 디자인이었고 업무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한글 디자인을 시작했다. 첫 번째 한글 디자인 작업이었던 훈민정음을 시작으로 3년 남짓한 시간을 함께한 회사를 뒤로 하고 혼자서 무언가 이루겠노라고 바둥거리는 지금. 31살. 비로소 폰트 제작을 하고 있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21년이 걸렸다. 돌아보면 작은 배움 어느 하나 쓸모없는 것이 없다. 서예를 통해서 명조체와 궁체를 배우고 문자도안을 통해서 고딕체를 배웠다. 그래피티를 통해서 글자의 변형과 조형을 배웠으며 캘리그래피를 통해서 글자에 담기는 감성을 배웠다. 배워온 많은 것들을 활용하여 한글 디자인을 해왔고 그렇게 그린 글자들을 비로소 한글 폰트로 제작하고 있다. 어릴적에는 이렇게 될 줄 몰랐고 진지하게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21년의 시간 동안 나는 글자와 마주하고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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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마음에 엉터리로 쌓아 올리던 것들을 내려놓고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생각한다. 마음을 비우고 초심으로 돌아간다. 욕심을 내려놓는다.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위해서 작업하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폰트를 제대로 만들고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 결국 돈은 따라오게 된다. 낚시꾼이 되지 말자. 장사꾼이 되지 말자. 스스로를 다잡으며 오늘도 글자를 마주하고 작업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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