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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폰트 제작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을 오픈한지 일주일이 지났다. 일단은 30% 정도 달성했다. 홍보라거나 마케팅을 제대로 하고 있진 못하지만 폰트 디자인은 펀딩 오픈과 동시에 진행 중이다. 계획한 일정에 맞춰서 진행하고 있고 설령 펀딩이 실패한다고 할지라도 폰트는 완성시킬 생각이다. 아직 비즈니스에 대한 계획이 부족한 시점에서 당장 폰트를 판매하거나 유통시킬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포기할 생각은 없다. 애초에 그러한 각오 없이는 덤비지도 않았을 것이다. 밤이 깊은 이 시간에 흘러나오는 코피를 틀어막고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디자인이란 것이 그저 감각적으로 느낌만 충만하게 그럴싸한 결과물을 내놓는 게 아니다. 시답잖은 결과물에도 과정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클라이언트의 괴롭힘에 밤새 작업을 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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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폰트를 제작하면서 나는 내 스스로가 클라이언트가 되었다. 이전에는 그저 느낌 가는 대로 표현하고 싶은 대로 그럴싸한 작업들을 빠르게 빠르게 내놓았다. 페이스북에 올리고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각종 SNS에 올리며 반응을 살피고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 열심히 작업했다. 물론 그 효과는 미미했다. 그런 작업들은 결국 나 자신이 만족하지 못했다. 별 것 아닌 욕심에 눈이 멀어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눈 앞에 LIKE 하나에 하트 하나에 좋아하고 있었다. 나 자신을 알리는 일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런 방법으로는 10년을 작업해도 과연 얼마나 갈 수 있을까. 지금 소셜 네트워크에서 눈에 띄는 아티스트들이 과연 10년 후에 무얼 하고 있을까. 다만 남들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해 좀 고민을 해보았다. 더 이상 눈 앞에 소소한 것들을 쫓지 않기로. 더 멀리 앞을 내다보고 움직이자고. 나 자신이 하고 싶은 개인 작업들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자기 만족도 못된 것이라면 더 이상 논할 가치가 없다. 자잘한 작업들은 그만두고 제대로 된 작업들을 기획해서 진행하고자 시작한 첫 걸음이 이 폰트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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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폰트 디자인 작업은 내가 진행했던 다른 디자인 작업들보다 호흡이 긴 편이다. 한번 몰입해서 꽤나 오랜 시간을 붙잡고 있어야 흐트러지지 않는다. 잠깐 잠깐 손을 대고 작업해서는 전체적인 조형적 설계가 미세하게나마 달라져버린다. 사람이 하는 작업이다 보니 한번 어긋난 획을 다시 가져다 쓰다 보면 갈수록 수정해야 할 부분이 많아진다. 예를 들어 획 사이의 간격을 4로 정했다. 한번 실수로 3.75로 변했다. 이 획을 여러 곳에 붙여 넣으면 나중에 다 찾아내서 새로 수정해야 한다. 그래서 두 번 작업하지 않기 위해 굉장히 집중하는 편이다. 호흡이 길어지면 지친다. 눈도 피로해지고 허리도 아파오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딴 짓이 하고 싶어 진다. 정 안 되겠다 싶을 때는 웹 서핑을 하며 자료들을 수집하거나 관리하고 있는 SNS를 살펴본다. 그렇게 딴 짓을 하다 보면 지루해지는 폰트 디자인을 외면한 채 계속 딴 짓을 하게 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자책하며 다시 폰트 디자인으로 돌아온다. 1ST블랙을 작업할 때는 굉장히 몰입했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새벽 3-4시까지. 하루 종일 작업했다. 밥을 챙겨먹는 게 시간이 아까울 정도로 몰입했다. 작업 일정으로 한 달을 계획했지만 일주일 만에 끝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이 작업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처음으로 제작한 폰트를 무료 배포하며 그 반응을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급하다 보니 여러 곳에서 탈이 났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용해주고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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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쁘지 않은 시작. 그렇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이 본격적인 폰트 디자인은 지난 작업처럼 쉽지가 않다. 더 집중해야 하고 더 정교해야 하며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점점 지쳐가긴 하지만 내가 잘하는 작업은 이런 쪽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다 같이 작업하는 것이 아닌. 그저 혼자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하는 작업. 그렇다고 타인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소통하는데 있어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런 작업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소모적인 것들과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하게 허비되는 것들을 걷어내고 (물론 좋은 점도 많지만) 혼자서 작업에 집중하는 편이 상대적으로 어떤 결과물이든 더 효율적인 편이다. 이 부분에 대해 더 얘기하자면 나는 의견을 내놓고 받아들이는데 필요한 근거들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타인을 설득할 때도 그렇고 나 자신이 납득하기 위해서도 논리적인 근거들이 필요하고 그 것을 필요한 만큼이라도 이해할 수 있어야 했다. 지금도 나는 책 세 권을 들춰보며 폰트 디자인을 하고 있다. 김진평 저자의 한글의 글자표현. 이용제 저자의 한글 디자인 교과서. 그리고 가장 최근에 구입한 한글 디자이너 최정호. 책을 읽고 내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찾는 이유는 분명하다. 내가 왜 이렇게 자형을 설계했는지 스스로 설명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남에게 할 말이 없어진다. 보기 좋아서? 감각적으로? 느낌적인 느낌? 디자인의 근거는 논리적이 어야지 추상적이어서는 안된다. 내 주관적인 의견일 뿐이지만. 적어도 나는 그러고 싶다. 예술가가 아닌 디자이너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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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전 선배 한 분이 그런 말을 했었다. 본인은 작가라고 불리는 게 정말 싫다고. 디자이너는 작가가 아니라고. 당시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디자이너면서 아티스트일 수도 있다. 아티스트로서 디자인을 할 수도 있다.라고 생각했었다. 지금에 와서 그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일반화할 수 없는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디자이너는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작업을 진행하며. 아티스트는 감성적으로 감각적으로 작업을 진행한다. 과정에 대한 이야기지만 결과물에 있어서는 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SNS 상의 많은 아티스트들과 디자이너들이 보여주는 결과물들 중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형태의 작업들만 남은채 빠르게 묻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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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 한 시.
  • 작업일지 작성을 마무리하고 나는 다시 폰트 디자인으로 돌아간다.




  • ENJOY THE MO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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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LOW D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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